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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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슈베르트 세 개의 마지막 소나타 허승연의 드높은 개가 / 이상만
WRITER
대표 관리자
DATE
2015-05-23 08: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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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세 개의 마지막 소나타 허승연의 드높은 개가


흔히들 슈베르트를 ‘가곡의 왕’이라고 만 알고 있다. 음악의 천재하면 모차르트를 더 떠올린다. 베토벤과는 같은 시대에 살아 베토벤의 강렬한 작품 속에 파묻혀 우리에게는 그의 위대성이 제대로 부각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슈베르트는 베토벤보다 17년 늦게 태어나 한 해 뒤에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슈베르트는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베토벤의 예술적 역량이 조화를 이룬 작품을 많이 남기었다고 생각된다.


작품의 양적인 면에서는 베토벤을 능가하는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도 악성이라는 말을 슈베르트에게 붙이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번 허승연의 마지막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 실연을 듣고는 슈베르트는 악성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그는 천재 중의 천재이고, 하늘과 인간의 세계를 넘나들었기 때문에 그런 확신이 서게 되었다. 그는 낭만주의 음악을 꽃피운 음악사에서 보면, 위대한 개척자이다. 낭만주의 음악은 문학과 음악의 긴밀한 교섭 아래 이루어진 역사적인 예술현상이고, 새로운 길이었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이 이름을 붙였다. 슈베르트는 조용히 이런 혁명적 작업을 이룩하였다.


가곡을 작곡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 문학들을 섭렵하였고, 슈베르트는 문학인, 화가들과도 교류하였다. 특히 슈베르트의 피아노 음악에서는 그런 면이 역역하였다. 그는 피아노를 통해서 대 서사시를 써내 려갔다. 나는 처음 허승연이 한곡도 아니고 세곡을 한 무대에서 연주한다고 해서 반신반의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연주회가 유럽에서 열린다면 언론을 위시해서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냘픈 여성의 힘으로는 감량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 소나타에는 슈베르트 만년의 모든 이야기들이 묻어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015년 2월 11일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정각 8시에 연주가 시작되었다. 나도 몹시 긴장하면서 들었다. 듣는 동안, 굳어진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많은 상상력에 몰입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안에 그의 현란한 기교와 에너지를 의식하지 못한 채 빨려 들었다. 물 흐르듯 음악은 흘렀지만 음악의 구성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이어나갔다.


음악의 서정성을 잃지 않고 탄탄한 기교의 바탕 위에 음악을 만들어 갔다. 특히 슈베르트만이 이룰 수 있었던 피아노 기교의 확대를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리스트나 쇼팽 같은 피아노 음악의 완성자들에게 슈베르트가 아니면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허승연의 연주의 힘이 강한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에 이르러 Bb장조 21번 소나타는 한 시간에 가까운 긴 작품이다. 전반부 두 곡을 암보로 연주했지만, ‘한 시간 걸리는 대곡을 이제는 악보를 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끝내 외워서 연주해서 감탄하였다.


그의 강한 정신력과 신체적 힘을 느낄 수 있는 대장정이었다. 연주를 마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갈채를 보냈다. 그는 힘이 빠져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앙코르에 응해서 악흥의 순간을 연주하여 긴장하였던 청중들과 자신에게 여유로움을 보여주었다. 이 연주회는 허승연 자신의 인생 역정의 승리의 개가 일뿐 아니라 한국음악계의 큰 경사로써 기억됨이 마땅할 것이다. 허승연은 피아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의 격을 세계에 드높인 교육자이고 음악행정가이다.


 1996년에 결성된 허 트리오는 그의 자매들과 함께 세계를 누비고 있다. 여성 자매 트리오는 우리나라 최초이고 또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허승연은 서울예고 재학 시 도독하여 최고 연주자 과정을 이수했으며,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등에서도 수학하여 구미 음악의 대한 모든 것을 섭렵하였다. 특히 문학, 미술 등 자매예술의 이해에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 또 스위스에서 문화경영학도 수학했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다. 교육은 페스탈로치를 낳게 한 나라이다. 신학으로는 칼빈과 칼 바르트를 낳게 한 나라이다. 그가 일하고 있는 곳은 스위스의 독일어권인 ‘쥬리히’이다. 쥬리히는 세계의 철학, 신학, 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사조들을 일으키는 고장이다. 이곳의 음악원의 학장을 거쳐 종신 부총장을 맡는다는 것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그의 부친 허참씨는 과거에 이름난 기업가였다. 그러나 그의 부인과 함께 세 자녀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온 정성을 다했다. 정직, 성실, 겸손과 인내를 가르쳤고, 사랑으로 자녀들을 키웠다. 허승연의 예술적 성취는 한국가정교육의 개가였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긍지와 예술의 꿈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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