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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사람을 닮은 악기 첼로 / 허윤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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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관리자
DATE
2013-09-08 16: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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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파블로 카잘스가 200년 만에 이 악보를 처음 발굴했다고 극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그건 사실과 살짝 달라. 이 악보는 1842년경 파리에서 이미 출간되었고, 모음곡이 아니라 단일악곡 형식으로 연주되기도 했어. 다만, 그다지 취급을 받지 못하던 낯선 음악을 카잘스는 고작 13살 때 진가를 알아챈 거지. 악보도 얼마나 난해했겠어. 열심히 연습하고 다듬어 완벽한 연주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우리에게 처음 들려준 게 파블로 카잘스야.”

사람을 닮은 악기, 첼로


첼로를 연주하는 파블로 카잘스, 40대의 모습

첼로 연주는 오묘한 데가 있다. 첼로는 워낙 큰 악기라, 연주자는 첼로를 온몸으로 안은 채 연주한다. 젊은 연주자가 첼로를 만지는 우아한 손길을 보는 것도 좋고, 흰머리 지긋한 할아버지가 품에 꼭 맞게 첼로를 안고, 현을 쓸어내리며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때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첼로는 사람의 심장 가까이에서 울리는 소리다. 게다가 사람 목소리와도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낸다. 첼로는 사람을 닮은 악기다.

그 첼로가 연주하는 곡 중에 ‘성서’로 불리는 곡이 있는데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전조로 불리는 첫 소절을 들어보면, 친숙하다. 음이 낮게, 또 빠르게 움직인다. 건반처럼 현을 누르고, 활을 긁어대는 것뿐인데 첼로가 그렇게 깊고 여린 소리를 낸다는 게, 두 눈으로 보면서도 잘 믿기지 않는다. 선배가 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오늘은 한번 악기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볼까?”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떠올려봐. 수십 대의 다양한 모양의 악기들이 제 기량을 뽐내고 있지. 클래식에 사용되는 악기는 크게 건반악기, 관악기(목관&금관), 현악기, 타악기로 나눌 수 있어. 건반악기는, 말 그대로 손으로 누를 수 있는 건반을 가진 악기야. 대표적으로 피아노가 해당할 테고,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쳄발로), 오르간, 아코디언 등을 꼽을 수 있지. 소리를 내는 방법은 다르더라도 일단 건반이 달리면 건반악기라고 생각하면 돼.”


클래식 악기는 크게 (왼쪽부터) 건반악기/관악기/현악기/타악기로 구분된다.

“관악기는 기다란 대롱 모양의 관을 입김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야. 관악기는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로 나눌 수 있는데, 그건 입으로 부는 관을 나무로 만들었느냐, 금속으로 만들었느냐의 차이야. 요즘은 거의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서, 한눈에 구분하기 헷갈릴 거야. 금관은 번쩍번쩍하는 금색의 나팔 종류들- 트럼펫, 트롬본, 튜바, 호른 등을 말하고, 목관은 피리를 닮은 악기를 떠올리면 돼. 피콜로,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등이 있지.

금관의 소리는 우렁차고 날카롭고, 단단한 소리를 내는 반면, 목관은 바람이 스치듯 나는 소리야. 부드럽고 온화한 소리를 내지. 그렇다면 색소폰은 금관악기일까? 목관악기일까? 가장 분류하기 헷갈릴 텐데, 색소폰은 생긴건 금관이지만 일반적으로 목관으로 분류해. 입으로 부는 관에 나무가 들어갔기 때문에 말이야.”


현악기는 말 그대로 현을 활로 켜서 소리를 내는 악기. 대표적으로 바이올린을 들 수 있다. “음이 높은 순으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콘트라베이스)를 꼽을 수 있는데, 악기는 같은 군이라면, 덩치가 클수록 저음을 내. 손으로 뜯어서 소리를 내는 하프나 기타도 있지. 현이 겉으로 보이는 악기들은 모두 현악기로 분류한다고 보면 돼.

타악기는 익숙하지? 때리거나 부딪혀서 소리를 내는 악기야. 북이나 팀파니 심벌즈 트라이앵글 등의 악기가 이쪽에 속해. 멜로디를 표현하기보다는 박자를 맞추거나 극적인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게 타악기야. 북소리를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면, 베르디 레퀴엠의 <진노의 날(Dies Irae)>을 추천해. 물론 세상에는 이 밖에도 더 다양한 악기들이 존재하지만, 클래식을 듣는 데에는 대략 이 정도만 알아도 지장은 없을 거야.”



묻혀 있던 바흐의 음악을 알린 연주자, 파블로 카잘스


다양한 크기의 비올 [출처: ko.wikipedia.org]

오늘의 주인공 첼로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달라고 선배를 졸랐다. “첼로는 바이올린 족에 속하는 현악기이고, 오케스트라에서는 중저음을 담당하고 있지. 초기에는 보조악기로만 치부되기도 했는데, 점차 그 풍부한 저음이 주는 편안한 매력에 사람들이 빠져들기 시작한 거지. 처음부터 첼로를 위해 쓰인 곡은 많지 않아. 점차 첼로라는 악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빼어난 첼로 연주자들이 등장하면서, 다른 악기들의 곡들이 첼로 곡으로 편곡되어 연주됐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또한 첼로만을 위해 고안된 음악은 아니었다. 바흐 시절만 해도 첼로라는 악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첼로의 음역은 ‘비올라 다 감바’라는 악기가 맡았어. 비올라 다 감바 (Viola da Gamba)는 "다리에 끼우는 비올"이라는 뜻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첼로의 조상쯤 되는 악기야. 비올도 바이올린 족처럼 음역에 따라 크기가 다른 비올이 있었어. 18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바이올린 족으로 대체되었었지만, 최근 원전연주의 붐을 타고 다시 부활했지.”

“비올라 다 감바의 부드러운 저음 톤과 섬세한 감정표현을 두고, 인간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하다는 얘기를 많이 해. 걸출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인 ‘조르디 사발’이 참여한 음악 영화가 있어. <세상의 모든 아침> 그 영화의 OST를 들어보면 비올의 매력적인 음색을 감상할 수 있을 거야.”


비올라 다 감바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해 작곡되었던 이 곡은, 작곡된 이후에 사람들 뇌리에서 금세 잊혔어. 한동안 낡은 서점에 처박혀 있던 악보가 열세 살 소년에게 발견되지. 이 악보를 발굴해서, 다듬고 연주해 오늘날처럼 알린 사람이 바로 파블로 카잘스야. 오늘 우리가 듣는 명반의 주인공이기도 하지.”

이번 주 미션 곡인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전주만 듣고 무척 반색을 표했으나(아, 이거 알아요!) 그 전조 이외에는 낯선 첼로 곡이었다. 이제까지 들어온 여느 음악과는 달리 짧은 곡들이 여러 곡 모여 있는 모음집인데, 각 음악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귀를 기울여보면 리듬이나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이 음악들이 ‘춤곡’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고,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고?!) 그 춤곡마저도 독일풍의 춤곡, 프랑스의 춤곡, 스페인의 춤곡 등 다양한 나라 명이 붙어 있는데, 각 지역의 색깔을 상상해보며 들으면, 첼로 위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소리와 리듬을 구현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나 역시 하나의 육체 노동자입니다. 일생동안 그래왔어요.”


이번 주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작곡가 바흐보다도 연주자 파블로 카잘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카잘스가 고서점에서 우연히 바흐의 악보를 발견하게 되는 장면도 극적이지만, 전쟁과 내전을 겪었던 천재적인 음악가의 삶에는 실로 극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었다. 지난주에 이야기했던 영화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그 당시에 파블로 카잘스 외에도 천재적인 음악가들이 많이 있었을 테다. 하지만 누구나 같은 반응을 보였던 건 아니다. 예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나치에 협력했다는 오명을 가진 음악가들이 있고, 조용히 몸을 피해 음악과 삶을 연명해간 사람도 있다. 파블로 카잘스는 뜨거운 시대에 맞서 뜨겁게 살았다. 나는 그가 자신의 삶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내가 예술가인 건 사실이지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면 나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 나는 일생 동안 그래왔어요” 예술가와 육체노동자. 예술가 역시 노동자에 속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하는 일도 얼핏 비슷한 점이 많은데도, 보통 예술가는 우러러보고, 노동자는 내리 보는 고정관념 때문에 예술가와 육체 노동자 사이가 꽤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두 직업명의 실체를 간파하고 있는 파블로 카잘스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선배는 모르겠지만, 파블로 카잘스에 관한 예습을 착실히 하고 있었다.

카잘스는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에스파냐 내전, 제2차 세계대전까지 20세기의 격동을 모두 겪어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났고, 에스파냐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남달라, 한결같이 에스파냐 난민을 돕고, 에스파냐의 재건을 위해 힘썼던 음악가였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가 진정 좋은 음악가이기 전에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곡이 바흐의 본질이고, 바흐는 음악의 본질입니다”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하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집> 1. 프렐류드

그의 삶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제목이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인데, 정말 제목 그대로 그는 누구보다 삶의 기쁨을 많이 발견한 사람이었고, 슬픔 또한 많이 겪은 사람이었다. 카잘스가 누린 삶의 기쁨이란, 최고의 첼로 연주를 하고, 바흐의 악보를 찾아낸 극적인 사건만을 이르는 게 아니다.

그는 햇볕, 하늘, 바람, 풀, 집 등 그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감사했고, 그 덕분에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삶에 있어서 조건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도 여러 번 했는데, 그는 정말 그 말처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바흐의 악보를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남겼는데, 다시 읽어봐도 그때의 희열이 물씬 느껴진다. 그날은 카잘스에게 잊을 수 없는 날로 회고하는데, 아버지가 처음으로 풀 사이즈 첼로를 사줬기 때문이다. 그 첼로로 독주할 음악을 찾기 위해 아버지와 부두 가까이에 있는 어떤 고악보서점에 들른다.

“나는 악보 뭉치를 뒤져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오래돼 변색되고 구겨진 악보 다발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이었습니다. 첼로만을 위한 곡이라니! 나는 놀라서 그걸 바라보았습니다. 첼로 독주를 위한 여섯 개의 모음곡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어떤 마술과 신비가 이 언어 속에 숨겨져 있을까?

그런 모음곡이 있다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나는 곧 그 상점에 갔던 목적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오로지 그 악보 한 뭉치만을 들여다보면서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기만 할 뿐이었어요. 그 장면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전혀 흐려지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 악보의 표지를 보면 바다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먼지투성이의 오래된 가게로 다시 돌아가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나는 그 악보가 왕관의 보석이기나 한 것처럼 단단히 움켜쥐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 들어가서는 그것을 읽고 또 읽었어요.”


그때 카잘스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파블로 카잘스가 200년 만에 이 악보를 처음 발굴했다고 극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그건 사실과 살짝 달라. 이 악보는 1842년경 파리에서 이미 출간되었고, 모음곡이 아니라 단일악곡 형식으로 연주되기도 했어. 다만, 그다지 취급을 받지 못하던 낯선 음악을 카잘스는 고작 13살 때 진가를 알아챈 거지. 악보도 얼마나 난해했겠어. 열심히 연습하고 다듬어 완벽한 연주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우리에게 처음 들려준 게 파블로 카잘스야.”


파블로 카잘스가 <무반주 첼로곡 모음집>을 연주했던 순간들


지식채널e에서 소개한 파블로 카잘스의 이야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카잘스 본인이 이 악보에 빠져들어 경이감과 흥분을 느꼈다고 증언했으니 말이다. 어떤 열정으로 십 년이 넘게 그 악보를 붙들고 있었을까? 마치 이 악보가 자신의 이름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12년 동안 매일 그 곡을 연구하고 연습했습니다. 그래요, 12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모음곡 가운데 하나를 공개 연주회에서 연주할 만큼 용기가 생겼는데 그때 내 나이는 이미 스물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나 첼리스트도 바흐의 모음곡을 전곡으로 완주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라방드, 가보트나 미뉴에트를 따로 떼어서 하나씩 연주했지요. 그러나 나는 그걸 하나의 전체 음악으로 연주했습니다. 전주곡에서부터 다섯 개의 춤곡에 이르기까지, 반복 부분도 모두 켰어요. 반복 부분을 연주해야 비로소 놀라울 정도의 전체적인 짜임새가 생기고 모든 악장의 속도와 구조, 건축적인 구조와 예술성이 완성됩니다.

그 곡들은 학술적이고 기계적이며 따뜻한 느낌이 없는 작품이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그 곡은 그렇게 폭넓고 시적인 광휘로 가득 차 있는데 그걸 어떻게 차가운 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 특징들은 바흐의 본질 그 자체이며, 또 바흐는 음악의 본질입니다.”


이 곡은 당대에도 카잘스의 대표곡이 되었다. 청중들은 카잘스가 이 곡을 연주해주길 바랐다. 그토록 카잘스와 인연이 깊은 곡이었다. 전쟁 중 공습이 일어나 리허설 중 연주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카잘스는 가만히 활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가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그의 여러 이야기 중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연주자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왔고, 우리는 리허설을 계속했습니다.”

또 그의 말년에 에스파냐 난민을 돕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카잘스 축제를 벌이기도 했는데, 바흐 서거 200주년을 기념한 축제라 ‘바흐축제’라고도 불렸다. 그때 역시 그가 연주했던 곡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 ‘첼로를 위한 무반주 모음곡’이었다. 시간을 초월한, 긴 인연이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 카잘스보다 빠르고 친근한 음들.
화려하고 풍성한 분위기가 카잘스와 비교된다.

“카잘스는 유명세에 비해 녹음을 많이 남기진 않았어. 녹음된 연주조차 1930년대 한 녹음이라 음질이 매우 열악한 단점이 있지만, 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시작이자, 역사 그 자체인 명반이므로 꼭 듣고 넘어가야 하는 음반이지.”

“이 모음곡은 총 BWV 1007~1012까지 총 6곡인데, (BWV는 예전에 소개했듯 바흐 작품에 붙는 작품번호이다) 각 곡은 다시 6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총 36트랙, 2CD로 나오는 긴 곡이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 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특히 1번 전조는 CF에도 많이 등장한 곡이라 익숙하지? 같은 선율이 반복되는 듯하면서 조금씩 바뀌며 퍼져 나가는 바흐 음악의 매력을 듬뿍 느껴볼 수 있을 거야.”


위대한 마에스트로여!

“위대한 마에스트로여, 당신은 우리나라에서 깊은 존경을 받지만
 그것은 단지 뛰어난 예술가로서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가장 앞선 인간으로서이기도 합니다.”
파블로 카잘스가 84번째 생일에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교수들에게 받은 축하 메시지다. 이 한 대목만으로도 그의 삶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살다 보니 시작보다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시작하는 일은, 젊음의 패기로, 초심의 흥분으로 어떻게든 저지를 수 있는데, 매듭짓는 일은 다르다. 일관된 태도와 열정이 아니고서는 좋은 마무리를 하기 어렵다. 뉴스를 장식하는 수많은 사람의 사건ㆍ사고 소식에서도 자주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무슨 일을 하는데 꼭 시작도 잘하고, 마무리도 완벽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드물게도 그런 삶을 살고,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위대한 마에스트로여”라는 말을 듣는 삶이라니. 굉장하다. 그게 삶 가운데 있었을 숱한 유혹과 위기의 순간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증표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그의 음악에 그의 삶의 흔적이 묻지 않았을 리 없잖나. 첼로는 심장과 가장 가까운 데서 내는 소리라고 했으니.

로스트로포비치나 푸르니에의 연주보다 카잘스의 연주는 어쩐지 담담하고 느릿느릿하게 느껴지는데, 그게 참 편안하고 아늑하다. 인생의 수없이 기쁘고 슬픈 일을 다 겪고 난 사람이, 더는 놀랄 것도 호들갑 떨 것도 없다고 담담하게, 자연스럽게 내는 소리 같다. 잘 연주하는 것과 좋은 연주하는 건 조금 다른 의미가 아닐까? 이번 주에 참 좋은 연주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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